12 졸업
졸업식이다.
이제 저녀석이랑 나는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는구나.
왜 공부따윌 잘해서 저런 좋은 학교를 가게 됐는지.
그냥 저녀석이랑 같은 학교나 갈껄 그랬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계속 연락하고 살면 되는 일이니까.
"현수야, 같이 사진 찍자."
아직은 어릴 때 일이다.
고등학교가 갈리고 어린 중학생 시절의 기억.
"으... 으응..."
닿기도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닿는 게 부끄러웠다. 수줍었던 것이다.
이미 날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다.
나는 그 감정을 몰랐으니까.
소년이라기 보단 소녀같은 수줍음으로
난 그 당시 장난기가 많아서 얼마나 괴롭혔는지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뽀뽀하고 껴안고
나는 감정이 없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현수녀석은 엄청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남자녀석한테 뽀뽀나 받고.
그런데 그녀석은 그걸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첫뽀뽀 받은 위치, 날자, 처음으로 안아준 날, 손 잡은 날.
남자녀석이랑 장난으로 뽀뽀한 날, 껴안은 날, 손 잡은 날을 기억하다니.
그게 대체 뭐라고.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것이다.
내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내가 그녀석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알게 된 건 분명 헤어지면서 일 것이다.
그 전엔 있는 게 당연하고 만나는 게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행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학교도 제대로 안나가더니 훌쩍 이사를 해버렸다. 연락도 없이.
그러더니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거다.
잘됐다란 생각밖에 안들었다.
근데 그 소심한 녀석이 더 소심해져서 돌아온 것이다.
수소문 해보니 전 여자친구가 엄청 쪼아대서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고 그랬다.
분명 그 여자랑 사귀게 된 것도 그 녀석 성격에 거절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음, 뭐해?"
"아, 옛날 앨범."
"우와. 이게 뭐야. 초등학교 때네? 와 이땐 이렇게 얼굴 왕만하게 똥글했는데. 이젠 아저씨 다됐어. 히히... 얼굴 선 진짜많이 드러났어. 옛날엔 찐빵같이 생겨서 귀여웠는데. 이거 봐. 이때 턱선은 하나도 없었잖아. 젖살 빠져서 미남 됐어."
말도 많이하고 수다스러워지고.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좋아? 나 다시 얼굴 살 빵빵하게 똥그랗게 되는 게 좋아?"
"아냐. 지금이 훨 나아. 내 잘생긴 팀장님이잖아."
"그거 비꼬는 거야?"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아... 졸업식 하고 찍은 사진이네. 근데 누나 정말 너무한다. 왜 뽀뽀하는 걸 찍어서."
"뽀뽀하는 거 싫어?"
"나 중학교 때 너한테 뽀뽀받는 거 사실 싫었었어."
"뭐?"
"처음엔."
희죽거리며 웃는다. 내가 화내는 걸 알았나보다.
그 땐 싫어한다고 해도 싫어하니까 더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싫다는 말을 듣는 그 자체가 싫다.
"처음엔 싫었어. 마음에도 없는데 스킨십은 해대지. 서로 남자니까 이건 무효키스야 라고 하지. 화장실은 같이 다니지. 난 그때부터 좋아했었단 말이야."
"다시 말해봐."
"처, 처음엔 싫었다고."
내가 원하는 말이 뭔지 알면서도 가장 앞에 말을 골라서 한다.
그게 그 나름의 새침함이다.
"아니 제일 마지막에 했던 말. 뭐라고 잘 못들었어."
"화장실 같이 다녀서 싫었다고. 남자들 소변보는 데 남에꺼 쳐다보고 그런 거 싫었어."
"아니 그 말 말고."
집요하게. 한 번이라도 더 듣고 말테다.
"그 때부터 좋아했다고!"
"응 나도 좋아해."
이제 네 발걸음이면 내 심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네 눈을 마주치면 세상이 보이고
네 숨결만 들어도 나는 살아있다고 실감한다.
졸업을 해도 계속 만나고
어딜 가든 계속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내 곁에 있어야 하는 거다.
이제 졸업해서 바이바이 하는 일은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