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x 히로키 - 13 -
할머니가 출근 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리 출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맞고있던 주사는 어느정도 맞고 뺐는지 그 흔적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런 한가한 시간을 가지면 더 우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히로키를 보면 더 자괴감이 들 거 같아서 그냥 혼자 집에 있기로 했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일을 집으로 가져올 것도 없을 뿐 더러,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TV도 컴퓨터도 심지어 책 한 권 없는 집이다. 할 수 있는 건 잠을 자거나 혹은 일어나서 씻거나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누워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권해준 것은 '출근'과 '사랑을 쟁취'하라는 것 정도.
그 말을 들어도 되고 안들어도 된다. 그건 내 마음이니 말이다.
히로키는....
히로키가 당한일에 대해서 반대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첫날부터 모르는 아저씨한테 키스 당하고.
물론..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담당의란 사람이 밥 먹여주는데 싫다는 당근을 먹이고 키스를 하질 않나.. 양치질도 시키고, 화장실도 보게하고, 환의 갈아입히다가 펠라치오를 하질않나..
후.... 내가 봐도 내가 문제네..
그냥 성추행범이네. 강제로 키스하고 강제로 펠라치오 하고, 강제로 애무하고.
또 하고 싶다.
히로키랑.. 하고 싶다.
입술도 맛있고, 가슴도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고, 살결은 보들보들하고..
아.. 이런 생각 하지 말자.
그렇게 뒹굴거리다 또 몇시간 잠을 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히로키와 데이트 하는 꿈을 꾸었다.
히로키가 해도 된다고, 해달라고 키스를 재촉하는...
왜 삽입하지 않냐며 화내는 히로키.
혹시나 만나게 되도 만지지 않아야지. 너무 꽉 묶으면 힘들지도 모르니까... 버드키스만 하자.
혼자 말도안되는 규정을 정하고 히로키를 만나야지 라는 마음을 먹고 만날 방법을 생각했지만 그런 방법따윈 없었다.
병원에선 연락 한 번 오질 않았다. 병원에 의사들이 알아서 환자는 데려 갔을테고(하필이면 VVIP이고, 마에다 의원님의 아드님이시니 얼마나 몸값 비싸게 팔려갔으려나...) 간호사들은 바빠서 그런 사소한 연락은 더이상 하지 않을것이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한 쪽으로만 누워 있으면 탈지도 모르는 고기처럼 뒤집었다.
"후우...."
할 일은 없었고, 생각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좋은 점은 이런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누구 한 명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관심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다녀왔다 간 이후로 개미 한 마리, 벌레 한 마리 지나간 게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또 잠에 들었는지 눈을 뜨니 햇볕이 뜨거웠다. 창문도 닫혀있고, 커튼도 쳐져 있었지만 동쪽에서 들어오는 볕은 지금이 아침인 걸 알려주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적당히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언제 밥을 먹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원래 식사량도 적긴 하지만 식사를 꾸준히 고정된 시간에 하질 않다보니 흔히들 갖고있는 배꼽시계라고 하는 건 없었다.
편식도 안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다. 당근을 먹이든 양파를 먹이든, 고기를 먹이든 내 반응은 별 반응 없을것이다. 그런거에 비하면 히로키는 정말.. 당근에...
혼자 생각하면서 가면서도 히로키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바로 슬퍼졌다.
좋은데....
좋아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해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고기반찬.. 잘 나오지도 않는데 잘 먹으려나..
그렇게 뭘 먹었는지도 모르는 끼니를 챙기는 밥을 먹고 와서 집에 다시 들어와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일을 자고 일어났는지 몇끼를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날자가 흐르고 핸드폰이 꺼지지 않게 충전을 해놓았을 때, 전화 연락이 왔다. 전화따위 받고싶지 않아서 몇번을 그냥 진동을 무시하고 잠을 잤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나고 대충 끼니를 때우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핸드폰은 갖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전화가 와도 내가 꼭 보지 않아도 큰일 날 일 같은 건 없었다. 몇일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방치해두었던 전화에 관심이 갔다.
무슨 일일까.
몇일이 지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전화가 누구에게서 온 건지도 당연히 모른다. 남겨진 몇개의 문제메시지 중에서 눈이 가는 게 있었다.
[타치바나 선생님, 마에다군이 위급합니다.]
문장은 간결했다. 그게 언제 온 문자인지 확인하고, 현재 날자를 확인했다. 만 이틀이 지난 일이지만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씻을 여유도 없었고, 머리를 정리할 정신도 없었다. 뭔가 옷을 집어 입긴 했는데 조합이 이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병원을 들어가서 후다닥 뛰어올라가서 VVIP룸을 벌컥 열고
"히로!!!!!!"
라고 평소 머릿속에서 히로키를 부르는 애칭으로 불렀다.
멀뚱히 쳐다보는 눈은 놀란 토끼눈으로 이거 뭐야? 무슨 일 있어? 당신 그 꼴은 뭐야? 라는 눈빛을 포함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히로키의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은 야윈 듯한 모습, 그리고 떡진머리, 냄새날 것 같은.. 뭐랄까 자기가 몇일 안나왔는데 자기 자신보다 좀 더 지저분하고 더러운 듯한 느낌... 어디 아픈 곳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청진기도 펜라이트도 없었다. 그래도 건강상태는 괜찮아보였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는지 긴장해서 놀란 표정 그대로 물어왔다.
"몸은? 괜찮아?"
놀라서 멀쩡한 걸 확인하고도 다시한 번 히로한테 물어서 확인했다.
"어디 아픈데 없어?"
온 몸을 더듬거리며 촉진해보지만 기존에 다쳤던 찰과상은 일부 나아서 거즈를 댄 부분은 좀 줄어든 듯 했고, 그 외에 뼈나 그런 부분만 아직 아픈 듯 했다.
"어? 다리랑 팔이랑.. 원래 아픈데인데..."
뭘 물어보는 지 잘 이해가 안됐는지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애를 괜히 놀라게 한 듯한데...
"어...? 어...."
그렇게 사고나서 아픈 부분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잘못 짚었다. 다시 보니.. 한참 손놓고 있었더니 지저분해졌고, 제대로 못먹었는지 야위어 있었다. 냄새도 날 것 같은 머리에 안심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고는, 괜찮아?"
라고 다시 확인했다. 내가 괜히 놀라게 한 듯 했다.
"...무.. 무슨 일 있어..? 어어.... 그런데 당신 왜 그렇게 놀래서..."
안심시켜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보는 히로키는 더럽고, 푸석거리지만 예뻤다. 여전히 예뻤다. 그렇게 놀라서 나만 보고있는 히로. 이쁘다.
"아니, 별 일 없어."
입술을 훔쳐 달아나듯 도둑키스를 하고는 도둑답게 병실을 휙 하고 나가버렸다.
뭔가 손 댈 일이 많았던 병실이었다.
먼저, 히로키의 케어가 제대로 되고 있질 않았다. 몇일 안비웠다고 생각하는데 헬쓱해졌고, 더러웠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건지.. 그리고 머리는 떡져있었고, 피부는 거칠었고, 옷도 얼마만에 갈아입히는 건지, 속옷은 언제 갈아입힌거고... 키스한 입술마저 까칠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변엔 이해할 수 없는 게임기며 교과서며.. 이해할 수 없는 물품들이 쌓여있었다. 푹 쉬어야 하는 환자 주변에 교과서라니? 그걸 가져다 준 보호자도 그렇지만
그걸 그대로 방치한 간호사들은..
그런 세세한 부분을 이야기 하려고 병동 수선생님을 만나 이야기 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메시지는 누가 보낸거냐고 물었더니 번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누가 보낸 장난메시지 인지 알 수 없다고 시치미 뗐다.
내가 자리를 비우니, 외과원장을 지망하고 있는 만두같이 생긴 다나카 선생이 와서 마에다군의 담당의를 자청했다고 했다. 매일같이 바쁜시간에 레지던트며 간호사들이며 휘두르고 다니면서 라운딩을 했고, 하는 잔소리의 역습을 당했다. 그것때문에 제대로 케어가 되질 못했고.. 라는 변명.
그런 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좀 제대로 해달라고 말 해놓고 식당으로 갔다. 식단을 확인하고 스태미너식을 요청했다. 내가 없어도 VVIP룸의 식단은 스태미너식으로 고기가 빠지지 않고, 미네랄 밸런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렇게 옷도 제대로 안갈아입고 병원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조용히 VVIP룸을 문 밖에서 들여다보았다. 다행이 히로키는 할 일 없어서 인지 낮잠에 빠져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가서 한 참을 내려다 보았다. 없는동안 얼만큼 힘들었을지.. 머리를 쓸어주며 떡진 머리에 화가 났지만 그래도 참고 잘 지냈던 것 같다. 도둑 키스를 하고 그대로 퇴근했다.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은 채로 출근을 했더니 역시 아무래도 자신의 상태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히로를 만났다니.. 히로도 깔끔한 편은 아니었고.. 서로 불편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게 너무도 짜증났다. 그래도 히로를 보고나니 좋았다. 병원에 가질 않으면 그모양으로 계속 불편하게 있어야 했다. 자신이 병원에 출근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생겼다. 히로를 보는 건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질 않으면 히로는 계속 그런 대접을 받고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꼭 출근해야 했다. 새로받은 진료실에 쳐박혀 있으면 히로를 안봐도 될거다. 환자를 좀 보고 히로 좀 챙기고, 그리고 잘 때 몰래 키스하고 와야지. 마지막 부분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수고한 자신에게 마지막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도둑키스만 허용하자 라고. 들키지 않게 살짝 매일 굿나잇 키스를 받으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생활하자는 마음을 먹고, 오늘 굿나잇 키스를 하고 나왔으니 내일 출근을 위해서 씻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옷을 챙기고 씻고 나와서 깔끔한 모습으로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