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x 히로키 - 21 -
"마에다군 인계 주세요"
평소랑 다르지 않은 인계,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마에다군이 매일매일 다른 생활, 그리고 점점 나아가는 걸 실감한다.
"쌤, 이렇게 빨리 회복해서는, 이번달 안에 퇴원 할 거 같은데요?"
"퇴원을 내 영역이에요."
울컥해서 이렇게 쏴붙였지만 간호사들은 이미 알고있다. 퇴원시키는 걸 주저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다 쉬었고, 나았고. 재활치료도 진행되서 퇴원이 눈앞이라는 것을. 사실 지금 퇴원해도 문제가 없다. 통원치료로 충분하다.
"아, 마에다군 생일이 7월 22일인 거 알고 계세요?"
"아..."
"퇴원전에 병실에서 생일 챙겨줄건데 쌤도 참가하시죠?"
"글쎄요.."
말을 그렇게 흐렸지만 사실 퇴원할 것도 걱정이 되고, 여러가지 면에서.... 생일.. 이구나. 히로 생일은 좋은 날이겠지?
"전에 케이크 이야기 할 때.."
뭔가 조잘대는 거 같은데 딴생각 해서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치바나 선생님? 다치바나 선생님!"
"아, 네?"
"들고 계셨어요? 근데 요즘 마에다군이 선생님께 자주 전화드리는 거 같은데, 만나도 되지 않아요? 또 인계받고 뭐 사러 가실꺼죠?"
그 전의 전화 이후로 평소라면 아침부터 케이크 사러 줄 서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제시간에 와서 인계받고 있으니 뭔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응. 큐베이에 초밥 주문 해뒀는데요."
"아, 그래서 마에다군이 초밥초밥! 하고 노랠 불렀구나"
"귀여웠겠네요."
부럽다. 히로, 춤추고 노래하는 히로. 내가 그렇게 해놓고 왜 난 못보는 건데?
"과장님.. 정색하면 무서워요.."
"내가 지금 정색 안하게 생겼어요? 그 울 귀여운 히로 노래하고 춤추는 걸 혼자 보다니.. 아니 나만 빼고 보다니.."
"보러가세요~ 선생님~ 우린 안말려요~ 뒷처리도 깔끔하게 해드릴게요~"
뒷처리는 무슨 뒷처리야.. 라지만 그 때 뒷처리는 다 간호사들이 했구나.
"....지금 저 놀리는 거죠? 선생님들 수고 하시는데 원하시는 초밥 하나씩 더 사올게요. 여기 적어주세요. 세트로 주문해뒀으니까 아마 부족하진 않을거에요."
"와~ 이게 왠 횡재래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렇게 인계를 받고 바로 주문해놓은 초밥을 찾으러 긴자로 나갔다.
*****
긴자의 분위기는,
뭐랄까... 나랑은 다른 것 같다.
고급음식점과 밤에는 유흥주점들로 그득한 긴자는 낮이든 밤이든 익숙치 못했다. 어른들의 특유의 분위기. 잘 재놓은 듯한 곳. 그러면서도 흐트러진 곳. 절제된 공간, 그리고 절제된 분위기. 그런거 싫은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잘 맞춘 수트같은 느낌. 뭐 정장은 입고 다니지만.. 좋아서 입고다니는 것도 아니고. 옷은 항상 준비되어 있고 집은 적당히 정리해준다. 할머니가 보내준 사람은 내가 출근하고 나면 집안일을 해주고 내가 집에 들어가면 누가 왔었던 흔적도 없이 깔끔해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사는 냄새가 안나는 집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강제휴식을 취하는 곳이 되었다.
점심때 맞춰서 초밥을 가져다줬다. 외과의사나 되서 하는 일이 초밥배달이라고 누가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루라도 더 즐겁게 함께 있다가 퇴원하게 된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히로 퇴원일을 25일로 적어놓고 22일 생일 당일에 어디서 뭘 사올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스위츠를 샀더니 어느집 딸기케이크를 한 홀 사올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간호사들보고 어느집이 나은지 투표를 올려놓고 결과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에 전화가 울렸다.
"타치바나 입니다."
전화올 곳은 많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항상 약간은 차가운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하필이면 히로였다.
[잘 먹었어. 맛있더라.]
"응.."
청어알 군함말이 잘 먹었으려나, 생일날 초밥도 큐베이에서 주문을 해야겠다고 메모를 붙여놓고 말을 이었다.
"또, 먹고 싶은거 있으면!"
부담스러워 하려나. 저번에 내가 사왔다고 했더니 좀 싫은 눈치였던 것 같은데..
"얘기해 사다줄게"
히로가 퇴원할 계획을 잡으며 통원치료 스케줄을 잡고,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길 공백들을 메우려고 환자를 한 둘씩 잡다보니 쓸모없이 바빠지는 게 싫었다. 히로와 함께할 땐 히로에 집중하고 싶었다.
[오늘 바빴어?]
불쑥,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바빴냐고 묻는다. 불편하다. 바쁘냐고 물으면 바쁘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부터. 바쁘다고 거짓말 하는 것도 싫어서 바쁘지 않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니.."
이렇게 잘라내면 될꺼다. 퇴원하면 볼 일도 없을테고, 통원치료 끝나면... 통원치료 받을 때도 날 보러 오려나. 안봐도 되는 방편으로 해봐야지. 물리치료 받고 물리치료사랑 면담시키면 되겠지.
[직접주러 올 줄 알았는데.. 누나들이 제때 줘서....]
"직접.. 갈.. 용기가 없어서"
[아, 안 바빴어? ......]
안바빴냐고 다시 물어볼 때, 미안했다. 아무래도 정에 굶주려 있는 아이인데. 차갑게 대하는 내가 너무 낯설고, 그리고 내가 싫었다.
"병동까지는 내가 가져갔어."
무심하게 말했다. 병동까진 갔어. 니 방에 안간거야. 널 보면 내가 널 먹을 거 같거든.
"점심시간 직전에"
[응?? 왜그래? 그만 미안해해도 돼]
웃음끼 머금은 목소리. 미안해서 부담스러워서 부끄러워 하는 히로키의 목소리다.
"미안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럼 왜?]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내가 널 좋아하고, 어떤 의미로 좋아하고, 그리고 보면 어떻게 할지.
"보기.. 싫잖아.."
[나 보기 싫다고?]
"아니 히, 마에다군이 나 보는 거 별로..."
[무슨 개소리야]
"보면 또.."
키스 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히로는 그런거 싫어하니까 안만나는 거야.
"그럴수도 있고.."
[지난번에 나 봤는데 당신 안그랬잖아]
"둘이서 밥 먹으면 키스할지도 몰라"
얼굴 보면서 혀 낼름 거리면 키스하고 싶잖아.
[....!!!!!]
"싫지?"
놀란 거 같다. 말이 없다. 마음이 조인다.
[.......]
"그냥.. 좋아하는 거 사다줄게"
[쌤]
"그, 정도만.. 하자"
[쌤]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히로도 뭔가 할 말이 있는가보다.
"응?"
[내가 앞에 있음 하고 싶고.. 그래? 근데 내가 싫어하니까 피하는 거였어?]
"......응"
[아.....]
"그러니까 전화만 하고"
울고 싶은 거 억지로 참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눈물은 이미 흐르고 있고, 목이 메었지만 전화중이니까..
"........안만나도 되"
전화 끊어버린 히로. 더이상 듣기 싫겠지. 싫은 사람... 우는 목소리.
전화를 끊고 한참을 정신없이 울었던 것 같다. 소리내서 울어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알고, 울어봤자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울면 그저 에너지소모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울고 싶을 땐 종종 울게된다. 누가 도와주길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편해지려고. 울고나면 좀 더 밝아질 수 있다. 쌓인 우울을 눈물로 털어내고 더 냉정해진다. 히로키와 헤어질 준비를 해야된다.
*****
그렇게 한참 지나서 어느 날,
재활운동을 하고 난 뒤에 아마 왔던 것 같다.
곧 잘 걸어다니고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퇴원이 가까워졌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이별이 다가와있었다.
"무슨... 일이야...?"
"바빠?"
매번 히로는 내가 바쁜지 물어왔다. 바쁜 부모님을 두고 바쁘니까 난 항상 뒷전인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 눈치보며 어떻게든 소통하고 싶은 만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게 많은데.. 내가 너무 차갑게만 대했나..
"아, 아니.. 안 바쁜데.."
"바쁘면 나갈게"
바쁘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 널 위한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문제는 그게 아니야. 시간은 있지만 공간은 함께하지 않는 게 좋겠지. 몇번 전화통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내가 단절한 이유는 단순했다. 보면, 만지고 싶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쌤 내가 생각해봤는데..."
"어.. 응.."
"쌤 안할꺼잖아"
"뭐.. 뭘??"
"아 그러니까..."
내가 뭘 안할꺼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건지. 건들지 않겠다는 말은 단언할 수 없어서 만나면 만질것을 전제로 만나자고 이야기 했다. 전화로 이야기 할 때에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전화는 좋다. 그냥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만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싫다고 하면, 같이 있어도 안할꺼잖아"
"어?"
"마에다군, 안한다는 게 어떤...?"
"...나 보면 하고 싶다며"
"아.. 응.."
만지고 싶은 손, 진료실 입구에 서 있는 히로키를 갈구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저 좋은 사람으로 멀찍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겠지. 널 보면 만지고 싶어서. 넌 나잖아. 어릴 때의 나.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싶고, 키스도 하고싶고. 물론 히로키 자체로도 좋아한다. 내가 아니라도. 사랑받지 못한 그 어린시절의 나에게도, 그리고 그 어린시절로 살고있는 히로키도. 히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을 퍼붓는 거지만 그건 내 멋대로 좋아하는 거고.
"근데 당신, 내가 싫다고 하면, 보고있어도 안할거잖아, 안그래?"
".....아.. 글쎄..."
만지고 싶어서 결국 일어났다. 진료실 입구로, 히로키 가까이 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다. 전화로만, 인계로만 만나던 히로키 실물이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즘은 얼마나 잘 씻는지, 뭐 당연히 본인이 씻으니까. 머리도 깔끔하고 몸에선 좋은 향기가 낫다. 히로키다. 끌어안고 싶었다.
머리를 쓰다듬었을 땐 그리 경계하고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네가 싫다면 나도 안할게. 라고 마음속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머리를 만지면 볼도 만지고 목도 어깨도 만지고 그 아래쪽으로 점점더 내려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볼을 타고 내려와 턱을 잡았다. 키스를 하면 싫어하겠지? 라고 히로를 보니 양파를 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직 당근은 아니네. 당근 먹은 표정이라도 보고 싶었다. 입술에 키스하면 당근먹은 표정을 짓겠지. 그리고 날 당근만큼 미워하겠지. 그렇게까지 싫어하면, 싫어해도 사실 키스하고 싶었지만, 지금이 마지막은 아니니까. 좀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히로를 건들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쥐어잡고 있던 이성이, 입술에서 이마로 입술을 옮겼다. 이마에 키스하고 난 뒤에 구겨진 얼굴은 내가 지금 피망이 된 기분이었다. 히로가 피망을 먹었을 때의 표정. 당근만큼 싫진 않지만 그래도 피망만큼 싫다는 표정.
"안아도 되?"
"그래라"
이마에 키스를 하고 더 많은 걸 요구했다. 히로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날 억지로 만난거니까. 이정도는 해줘라는 생떼를 부리면서 얻어낸 허그권이었다. 싫어하면서도 된다니까 끌어안았다.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시끄러웠다. 몸이 겹쳐지면서 닿는 면적이 많고, 그리고 서로 그리 두꺼운 차림이 아니었다. 히로는 환자복이라는 얇은 면소재의 상하의 외 속옷뿐이었고, 그리고 나는 정장바지에 셔츠, 그리고 가운 한 겹을 더 입은 말 그대로 서로의 몸 사이에 얇은 천 두겹씩 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심장소리뿐 만이 아니라 하체의 존슨씨가 내가 여깄다고 표효하고 있었다. 아마도 히로도 알아차리겠지. 그렇게 딱딱하게 변모한 아랫도리를 부비적 거릴 생각은 없었다. 히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고, 이렇게 닿았으니 더 알기 쉽겠지. 남자란 생물체가 얼마나 저질적으로 움직이는지.
얼마안된 시간이라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나있었다. 평소에 '마에다군'이라고 부르다가 평소에 부르는 애칭으로 불렀다.
"히로.."
"어?"
".........안봐도..."
품에 끌어안고 있던 히로를 밀어냈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안보는 게 맞잖아?
"꼭 봐야 될 일은 없잖아?"
차갑게 말했다. 외과적 수술중에 잘라내야 할 때. 리도케인이 없다면, 차갑게 냉각시켜서 조직손상을 적게하고 그리고 고통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내 몸에 있는 것을 도려내는 고통을 참아보려고 차갑게 경고했다.
"보러오면 키스 할꺼야"
등을 돌렸다. 그리고 울었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며 놓아주고 있었다. 안보면 되. 보내줄게.
"..... 그정도, 각오는 하고 와"
"....알았어"
"다음번에 입술에 안한다는 보장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