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x 히로키 - 23 -
그렇게 내쫓듯이 히로를 내 몰고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한낮의 해는 더 길어져서 지금시간이 되서는 창문을 통해 직사광선 같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눈이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거겠지. 왜 울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자신이 울고있다는 자각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울고 있는건가? 라는 묘한 괴리감과 현실과 분리된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쿵쿵ㅡ
책상을 치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쌤, 병동에서요."
전화를 했던 것 같지만 아마도 제대로 받지 않아서 진료실로 들어온 모양이다. 병동에서 별일이 아니면 전화도 안하고 이렇게 까지 찾지는 않을텐데. 아마도 히로문제로 전화 온 모양이었다. 사실 그러고 보낸 뒤에 걱정이 되서 받고싶은 마음과 그렇게 보내서 받기싫은 마음이 공존했다. 좋지만 싫은 이 애매한 마음은 그래도 좋은 마음이 더 크고 걱정되는 마음이 더 들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
귀가 따갑도록 병동 간호사들이 쨍알거렸다. 싸울 기력도 없었다.
[쌤! 마에다군한테 대체 뭐라고 한거에요?! 울 애기 침대에서 무릎세우고 울잖아요!]
언제부터 '울 애기'가 되었는지, 울고있다는 것에 내가 얼만큼의 책임을 져야하는건지. 그 외에 병풍같이 있는 간호사들이 한 입씩 덜어서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용은 '히로가 울고있다'라고 밖에 인식이 안되었다. 히로가 왜 울어. 울고 싶은 건 내쪽인데.
"난 할만큼 했어요. 난 잘못한 거 없어요."
냉정해졌다. 아니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한참 이탈되어 있으면서 마음을 식히고 뇌로만 글자로 받아들이고 그에대한 감정없이 '상대의 말'에 대한 대답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분리해서 감정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상태가 아닌 객관적으로 자신과 히로의 관계를 관철하고 있었다.
[근데 애가 울어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대화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기 싫다. 아무런 이야기도 아무런 상황도 이 상황이 도저히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는 무기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히로에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다. 나 자신에게 정떨어졌다. 쓸모없는 놈.
"....저기요? 내가 갑인데요?"
입으로 내뱉으면서도 참 어이없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 간호사들도 그게 무슨 상관이고 그게 중요한거냐? 라는 말투로 상대했다.
[애가 물었다니까!! 얘기도 안해주고 몰래 울고있는데!! 갑이 중요해?! 애 울려놓고!!]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포기했다. 히로를 이렇게 포기하는 게 나을거란 생각을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대체 뭐라고 하셨는데요? 마에다군은 그런 얘기도 안해주고.. 몰래 울기만 하고.."
상대가 어느정도의 냉정을 찾은 듯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히로 전담 간호사들이 열을 내고 있었고, 수간호사가 상황정리를 하고 냉정하게 묻기 시작했다.
"그냥.. 보러 왔길래, 볼꺼면..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오라고.. 나도 보는 게 마냥 편하진 않아서.."
도움을 받아서 관계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걸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걸어보았다.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그에대한 피드백이 왔다.
[....선생님이 잘못했네요. 애를 왜 내쫓아요.]
"내가.. 대체.. 뭘.. 오지 말라고는 안했어요."
난 잘못 없다로 발뺌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볼거면 각오하라는 게 오지말라는 소리 아니에요?]
잔소리가 2배가 되서 돌아왔다. 전화로만 하다가 만나겠다고 찾아온 애를 쫓아보냈다느니 부터 시작해서 용기를 내서 만나러 간 애를 그렇게 오지 말라고 내쫓았냐는 말까지.
"올꺼면.. 싫은 내색은, 안해야지"
[일단 간 게 중요하죠. 가서 선생님과 얘기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도 않고. 볼거면 각오 하라느니, 각오하고 간 애한테]
"얘기는 전화로 해도 되잖아요. 이마에 뽀뽀하는 정도로 그렇게 싫은티를 낼꺼면.."
각오하고, 온건가? 무슨 각오를 한거지.. 내가 막 건들여도 상관 없다는 그런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닌가? 좀 싫은티는 냈지만.. 그래도 안아도 된다고 했고, 키스하는 데 찡그리긴 했지만 밀쳐내지도 않았고..
[근데 직접 갔다면서요. 마에다군이 선생님과 얼굴보며 얘기하고 싶으니까 그런거 아녜요? 선생님 말씀대로 얘기는 전화로 해도 되는데..]
단순하게 싫어서 책임감없이 회피하고 있던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꺄~ 이마에 츄 하셨어요?!]
"네, 이마츄 했는데 송충이 본 눈빛이면 나도 견딜 수 없네요. 그래서 내쫓았어요. 됐어요?!"
하고 심퉁난 목소리로 내가 되려 소리치고 있었다. 당근먹은 표정 아니라서 내가 절해야 되는거야? 그럼 피망먹은 표정까지는 괜찮은거냐고. 당근아니면 된거냐고? 라고 마음속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통화는 계속되었다.
[저렇게 쪼잔해지다니..]
"쪼잔해서 미안하네요.."
있는 힘껏 삐뚤어진 목소리로 말을 했더니 상대방도 말실수 했던건지 '헙'하는 입막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이쁜데 뽀뽀도 하지 말라니.. 오지 말라고.. 칫.. 전화해도 원하는 거 다 들어준다니까.."
[...... 쌤.....?]
"....... 히로?"
전화기 저쪽 상황이 갑자기 찬물끼얹듯 조용해졌다. 아니, 갑자기 조용해지고 히로키의 목소리가 들린듯했다. 히로가 받은건가? 아니면, 환청인가? 계속 조용했지만 설마 히로가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환청이라고 일관하고 싶었다.
"마에다군? 잘못들었나.. 요즘 히로 환청이 들리는 건가.. 적당히 좋아하기도 이미 글렀으니까, 히로 우는 거 서포트 좀 해줘요."
[씨.......]
흠칫. 간호사들이 쫑알대는 말도 안들리고, 히로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참.. 많이 미쳤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칫,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암껏도 없네. 뭐 달라는 거 좀 챙겨주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줘요."
[씨발... 그럴거면 차라리 신경쓰지마!!!!]
"히로?? 마에다군? 마에다군?????"
전화가 끊긴 소리가 뚜- 뚜- 하고 들릴 뿐이었다. 히로가 맞았는데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던 나는 죽었다. 그리고 그게 히로가 맞다고 하던 내가 움직였다.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와줬는데, 난 그런 히로의 걸음마를 밀어냈다. 힘들게 걸어와줬는데. 사고난 이후로 어린나이에 한참을 누워 있다가 재활치료를 하면서 겨우 앉아있고 겨우 걷고 힘들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지금에야 되서 내게 다가와줬는데 난 그런 히로를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밀어내고 있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와줬는데 내가 밀어내서 미안해.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너스 스테이션을 무시하고 바로 히로 병실로 뛰어들어갔다.
무릎을 끌어안고 울고있는 모습, 그 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그렇게 웅크리고 가리고 있었다.
"마에다군?"
살아는 있는지, 석고상 같은 느낌도 들고, 죽은자의 방에 흰 천을 뒤집어 씌운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다. 이 세계엔 더이상 없는 존재. 너와 나는 다른 공간의 존재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됐어요, 누나."
거절의 말. 내가 싫겠지. 마음의 방황을 접고 겨우 찾아갔더니 쫓아내기나 하는 나따위.
"미안."
"가세요. 저 잘게요."
그게 뭐였건 끌어안았다. 히로든, 석고상이든, 천을 뒤집어씌운 가구든. 그냥 내 마음의 위로를 하려고.
"....쌤?"
"내 맘대로 좋아하고,"
"......씨발 꺼져.."
"..... 미안..."
눈앞이 흐려졌다. 아마도 울고있는 거겠지. 콧등으로 흐르는 물은 내가 울고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려줬다. 눈물 때문에 막혀서 코를 훌쩍거렸다.
"잘해주질 말던가 짜증나게.."
내가 울고있는 걸 알았는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자연스레 내가 끌어안고 있던 히로는 내 품에서 벗어났다. 이불만 애처롭게 끌어안고 울고 있는 나와, 어른이 이런일로 우느냐는 듯 당황한 듯 쳐다보는 히로가 있는 병실은 정적이 흘렀다. 서럽게 울면서 '미안' 하다는 말을 자그맣게 흘리며 훌쩍이고 있으며 우는 것 조차 미안해서 끅끅 거리며 소리죽여서 울고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뭘 잘했다고 우냐고 하는 엄마의 말이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이불을 끌어안고 우는 얼굴을 안보이게 가리고 싶었다.
"좋아해서.. 미안해.."
이제 마지막이니까 꼭 하고 싶은 말은 전하고 싶었다.
"이제, 안괴롭힐게..."
숨을 죽이며 우는 소리 나지 않게, 내가 울고있는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볼을 쓰다듬는 느낌도 들었다. 잘해주는 것도 괴롭히는 거라고 했으니까.... 이제 마지막. 진짜 마지막. 마지막으로 히로 얼굴 한 번만 더 보고, 포기해야지. 눈을 꼭 감고 눈물을 짜내고 히로를 쳐다봤다.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있는 힘껏 울음을 참으며 눈물을 삼켰지만 계속 눈물이 흘렀다. 뭐라고 달래는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내가 듣고 싶지 않는 것 뿐이겠지만 그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히로와 마지막이라고 정했는데, 눈물 사이로 보이는 히로는 너무 예쁘다.
그러다가 히로가 꼭 껴안아준다. 다시 제정신이 드는 모양인지 뭐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전화할걸"
"전화? 전화.. 해도 되?"
전화, 해도 되는건가? 히로랑 마지막 아니어도 되는건가? 잘해주거나 괴롭히거나 그런 거 말고 전화는 해도 되는건가.
"어, 쌤이 전화만 하자고 그랬는데.. 내가 억지... 부린거지? 전화해. 힘들면 안찾아갈게. 미안."
내가, 전화해도 되는건가? 매일 히로 전화 기다리기만 하고 내가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괜히 내가 전화했다가 불쾌해할까봐 전화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전화해도 된다고 한다.
"헤헤.. 전화해.."
마주 끌어안으며 히로가 전화하란 말이 좋아서 마주 끌어안았다. 방금까지 울던 아저씨가 끌어안고 전화해도 된다는 말에 울다가 웃으니.. 히로가 보기엔 난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아저씨로 보이겠다.
그래도 기뻤다. 포기하지 않아도 되구나. 전화해도 된다는 말은, 받아준다는 말인가?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입술끝에 맺히다가 히로의 입으로 다가갔다. 키스, 받아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밀어내진 않았다. 싫어하는 표정은 사실 눈물에 번져서 보이진 않았지만 끌어안고 어루만지며 하는 딥키스에 당황한 몸은 확실히 뻣뻣했다. 싫지만, 싫은티를 최대한 나지않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키스도 받아준거니까, 괜찮은거겠지?
맛있는 키스를 정리하고 아쉽게 입을 떼며 쪽하고 소리를 냈다. 품에있는 게 히로가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히로다, 히로랑 키스했지만 품에있는 히로는 날 밀쳐내지 않는다. 그 기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하지 않았다.
"전화할게"
".....어....."
품속에 있는 히로는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여전히 귀여운 내 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