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출근하기 싫다고 말하면서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다. 종종 쉬는 날을 두고 쉬고 있지만 쉬는 날에도 딱히 할 일은 없다. 다들 골든 위크라며 놀러 다니거나 하지만 미안한 말이지만 병원에서는 그 달력에 그려져 있는 대로의 빨간날을 그대로 쉴 수 없었다. 골든위크,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쳐져 있는 일본 특유의 연휴. 나는 어느 날이든 쉬어도 되는 날이니 그런 골든 위크랑은 관계없었고, 다른 의사들은 특별한 수술이나 위급한 환자들이 없다면 당연히 쉬는 날인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는 다르다.
벚꽃은 비를 맞아 다 떨어지고, 연록의 새 잎이 나는 벚나무. 날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그리고 따뜻해진만큼 춘곤증의 계절도 함께 찾아왔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한 둘 받기 시작하면서 진료실에 있게된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지만, 이렇게 할 일 없이 앉아있으면서 졸고있을 꺼라는 생각은 졸고있는 지금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타치바나 선생님?"
"....네?"
졸던 내가 요시무라씨의 목소리에 쉽게 깼다면 이런 봉변을 당하진 않았을꺼란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리 좋은 꼴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다. 볼펜을 물고 꾸벅꾸벅 졸다가 몇번을 불렀는데도 깨질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깨를 몇번 두드렸는데도 안깼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의자를 뒤로 빼면 깰꺼라 생각했는지 조금 의자를 뺐는데 내가 책상에 쳐박은 것이다. 가볍게 이마만 박았으면 좋은 꼴이겠지만 물고있던 볼펜부터 책상에 꽂히고 그 위에 물고있던 이며 이마며, 안면 전체적으로 가격당한 뒤의 모습이.. 아무래도 좋은 모습은 아닐것이다.
그래도 어디 찢어진 곳 없고 얼굴에 볼펜으로 그려지지도 않았고, 일정 이상의 통증이 징징거리고 있지만 외상은 없었다.
그렇게 일정 시간 상호간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요시무라씨가 입을 열었다.
"병동에서 전화왔었는데요, 마에다군 외출할 수 있냐고요."
주치의인 내가 허가하지 않으면 물론 외출할 수 없다. 외출이라는 게 병원밖으로 잠깐 나가는 정도의 외출이며, 보호자가 와서 나가는 외출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아, 네.. 날도 좋으니. 괜찮겠죠."
내가 오고 한 3주 정도 지난 듯 했다.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는 회복속도가 좀처럼 더디더니, 내가 온 뒤에 케어가 잘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로의 회복력은 기존보다 더 좋았다. 마음이 편해서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어느정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고, 주변을 정리할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있다면 걸어다닐 수 있고, 퇴원하겠지.
"이정도의 속도라면,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퇴원하겠네요."
초하의 지금에 움직임에 제한이 없고, 여름이 시작하고 더워지는 그 즈음이면 재활훈련을 받고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다보면 금새 좋아져서 쌀쌀해질 때면 퇴원하겠구나.
히로가 퇴원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우울해졌다.
퇴원하면.. 못보겠네.
차트 내용을 확인하면서 어느정도 회복되었는지 보던 중, 어느 새 아침 8시 식사 이후 인계시간 이후의 드레싱 전의 시간의 1, 2시간 수면이 없어졌다. 낮잠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엑스레이 촬영 필름을 보면서 부러진 대퇴골은 깨끗하게 잘 붙어서 누워만 있던 히로는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갈비뼈는 아직 덜붙어서 혼자 일어나기엔 역부족이지만 흉통을 어느정도 감수한다면 혼자 앉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회복된 여러곳을 보면서 조금 서글퍼졌다.
아이는 엄마품을 떠나간다. 뱃속에서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오고, 목을 가누기 시작하면 정면만 보던 아이는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기고 걷기 시작하면 품을 떠난다. 그렇게 성장해서 사회적으로도 자립한다.
회복하는 히로가 또 다쳤으면 하는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더 보고있고 싶다.
자는 시간에 가면 종종가서 도둑키스를 하다가 이제 조식 이후의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밥을 정리하고 드레싱하러 오기 전까지 잠을 자질 않고 깨어있다.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아무 의미없이 있던 psp는 수면시간이 줄어들면서 왼손으로 들어있던 동영상을 몇개 보더니 간호사들에게 부탁해서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본 듯 했다. 그렇게 들어간 인터넷 세상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던 한 달간을 다시 복구시켰다. 물론 TV는 있었지만 그리 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쵸, 애들은 금방 건강해져요."
어린애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성장기의 끝에 서있는 그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청소년기는 가장 힘든 시기이고, 그리고 가장 즐거운 시기이다.
"이제 드레싱 할 것도 없어요."
드레싱 할 것도 없다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시선이 위로 올라온 요시무라씨는 놀란 듯 했다.
"인계시간이네요."
"아, 네.. 다녀오세요"
그렇게 진료실을 뒤로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아침에 출근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계시간 전에 이렇게 졸고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 몇분 안되는 시간에 이전의 히로는 졸고 있었고, 지금은 그 자는 시간이 없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성큼성큼 몇발짝 안되는 간호사실로 들어갔다. 아침 인계가 끝나고 환자들의 아침식사가 끝난 시간에 외출 허가를 내려놓았던 거 같은데 스테이션 앞에 멍하니 히로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못알아봤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마에다군 인계해주세요."
오늘 마에다군 전담인 타바타씨는 발랄하게 인계를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나이트 근무를 했던 기무라씨에게 받은 인계며 아침식사를 얼만큼 했는지 등등.
간호사들이 좀 더 편해지게 된 게 '전담간호사'를 두었다. 보통 근무할 때 담당하는 환자의 수는 다른 병원에 비해서 적은편으로 5명내외인데도 그래도 다른 환자를 보는만큼 힘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복귀하면서 마에다군 전담 간호사를 두었다. 다른 환자는 보지않아도 된다. 하지만 히로의 케어를 혼자서 하는만큼 그만큼 제대로 해주길 바랐다. 그만큼 일이 수월해지고, 편해지고 친근해질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이미 그런일을 당했고.. 그래서 비슷한 나이대로 불편하지 않는 그런 신규간호사로 두었다. 그렇게 했더니 히로가 원하는 걸 쉽게 말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없어도 왠만한 건 다 들어주라고 했다.
밤에 얼만큼 잘 잤고, 밥은 얼만큼 잘 먹었으며 그런 인계가 끝나고 난 뒤에 타바타씨는 말을 마쳤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희도 편하고 선생님도 편하고 좋은 거죠."
아무래도 다른 간호사들이 조금 질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신규간호사가 담당환자가 적은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4월에 배속되자마자 5, 7명을 담당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담 간호를 하는 간호사 선배의 부담당을 하다가 보통 한 둘씩 자신의 담당환자를 늘려가는 게 보통이었다. 히로가 누가 누군지도 모를 많은 간호사들이 들락거리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4, 5명으로 한정해서 휴무며 교대근무를 생각해서 1 : 1 간호를 하게 부탁했다. 헤드너스는 그 말을 알아들었고, 전반적인 케어부분은 4, 5년차가 한 번 확인하는 정도, 예민한 부분은 아무래도 연령대가 있는 사람이 해주었으면 해서 준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고등학생이 20대 여성에게 소변기 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불편할테니.
"일하기 편하면 다행이죠."
"마에다군 퇴원하면 전 할 일이 없어지네요~"
"아, 그럼 퇴사하는 겁니까?"
"악! 저 마에다군과 함께 나가는 거에요?"
"뭐, 정 원하시면.."
하고 장난치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잠깐 웃고는
"선생님은.... 안 외로우시겠어요?"
"병원에 장기입원하는 사람을 보면서 퇴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전 마에다군이 첫 환자다 보니 많이 외로울 거 같아요. 선생님 때문이에요! 책임져요!"
"에? 제가 뭘 잘못했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거죠? 환자가 테이블 데스 했을 때 지어야 되는 책임 말고는 책임질 일은 최대한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말 끝에 싱긋 웃어 보였다.
타바타씨는 내 웃음에 슬픔을 보았는지, 그냥 첫 환자를 퇴원 보내야 하는 자신의 마음에 슬픔이 맺혔는지 코끝이 붉어졌다.
"선생님..."
급성기 병동에서 이렇게 환자에 집착을 해서야.. 만성기 병동에서면 퇴원이 아니라 호스피스 케어를 하는 사람 등의 마음과 다르게 급성기 병동은 아무래도 갑자기 입원해서 빠르게 퇴원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수시로 환자가 바뀌는 곳에서 첫 환자를 단 한사람으로 그것도 나이차이 몇 나지 않는 아이를 보게 한 내가 잘못한 거 같다.
"괜찮아요. 건강해져서 퇴원하는 거니까. 병원은 좋은 곳이 아니에요."
금방이라도 퇴원할 환자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에다군,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 맞다!! 그럼 전 가볼게요!"
그렇게 다시 밝은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병동을 나와 식당의 영양사에게 가서 식단을 확인하고, 오늘 식단도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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