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군, 인계해주세요."
너스스테이션 안쪽에서 히로의 인계를 받았다. I/O 체크부터 시작해서 수면량 등등. 환자에 관한 전반적인 인계였다. 그 환자가 히로 한 명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세세하게 챙기다 보니 보통 인계만큼 시간이 걸렸다. 초반의 인계내용은 조금 회의같이 딱딱하다가 분위기를 바꿨다.
"울 히로, 요즘 잘 먹죠? 역시 고기? 당근은 없으니까 안먹을테고, 양파나 피망 섞여나오는 거는요?"
"뭐.. 잘 먹어요."
"그렇게 대충 말하기에요? 뭐 다른 거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안해요?"
"쌤~ 쌤이 물어봐요~ 우리한테 그러지 말고요~"
분위기는 이미 사담으로 넘어갔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물어도 적절한 대답이 오지 않아서 실망이었다.
"마에다군, 그 피망 씹을 때 요기 요렇게 주름 가는 거 봤어요?"
"큭 그거 귀여워요! 괜히 피망 주고 싶어지잖아요~"
"어우~ 쌤! S 였어요?"
"쌤 오기 전에 당근 먹일 때가 더하죠!!"
"나도 히로키.."
"타치바나쌤?"
간호사들이 좋아하는 '챙겨주고 싶은 남자 코스프레'를 해보고, 관심을 끌면 '쌤 귀여워요~' 라는 가벼운 멘트가 날아온다. 내가 귀엽다는 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히로 보고싶다..."
"에구... 쯧쯔.."
"오구오구 슈쌤 울지마여"
시무룩 한 표정을 지으면 챙기기 좋아하는 간호사들이 오구오구 우쭈쭈 하고 있었다. 뭐 그들의 그런 관심병자에게 관심을 드리죠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다시 일모드로 돌아갔다.
"쌤, 인계 끝났어요. 저희도 이제 드레싱 하러 가야되요."
"아 정말.. 히로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방치해둘 수 있는거에요!"
"대체 언제쩍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탄튬도 먹였다면서요?"
"어머? 우리가 못먹을 거 먹인 것 처럼 그러시네요? 양치해줄 시간이 없어서 가글하고 적당히 뱉어두면 버린다고 했고, 먹어도 상관없는 거라고 했더니 그랬던 거거든요?"
이렇게 발뺌..
"근데 선생님, 마에다군 저쪽에 있는데요?"
스테이션 바깥에 휠체어를 탄 소년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바로 고개를 돌렸다.
1초도 되지 않는 동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두근 거렸다. 잘못한 거 없는데, 무슨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슈쌤, 괜찮아요?"
멘탈을 확인하는 간호사. 눈 촛점을 제대로 안맞추고 있다가 멍한 눈은 다시 시선을 이동시켰다.
"저, 울고 있는 거 아니죠?"
"네, 슈쌤. 울고 있는 건 아닌데 안구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네요."
"근데, 그 때 왜 그렇게 더럽게 씻기지도 않고 그랬어요? 그렇게 바빴어요?"
시선은 촛점이 맞질않고, 뿌옇게 흐려지고 물이 흘러 시야확보가 어려우면서도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흥, 쌤이 나와서 씻기지 그랬어요?"
그런 쌀쌀맞은 말보다 히로키의 시선 끝에 걸린 나를 바라보는 그 눈 빛이.. 눈물을 불러왔다.
"아니 그건 그러니까 내가.."
밖에서 히로키의 눈빛이 다시 비춘 듯 다르게 느껴지는 시선에 의식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냥, 의사 그만둘래요."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만두시는 건 좋은데 그렇게되면 마에다군 못보실껄요?"
"그러게요."
"그런데, 마에다군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글쎄요. 왜 좋아하는 걸까요? 히로키랑 대화하고 싶다.. 언제 제대로 대화했죠, 우리?"
"선생님 전에 출근하기 전, 아닌가요? 한 두달 된 거 같아요"
"야스다씨 때매 저 엄청 외로워요.."
"네? 제가 대체 뭘.."
뿌연 시야를 걷고 농담같이 쏘는 이야기를 했다.
"두 달이나 히로키랑 대화단절이랬어.."
"아니 그건 쌤이 물어본 거.."
"일단 이야기라도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마에다군 데려올까요?"
"아니, 잠깐. 내 심장이 그걸 원하지 않아요."
"풋."
"근데 쌤은 왜 마에다군에게 말도 못거는 거에요? 출근해서 보지도 않고. 라운딩도 안가고. 최소한의 진료도 안보고. 왜그래요? 방임주의에요 쌤?"
"이야기 하자면 길어요... 그냥.."
"막 보면 떨리고 두근 거려서 얘기 못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러게요!"
짝짝꿍 잘 맞는 간호사 둘은 이미 뇌내에서 슈x히로키 커플링 전개가 되가고 있겠지..
"막 떨려.."
"꺄아~"
"환자 가지고 무슨 얘기 하는 거에요...? 나랑 마에다군 가지고 BL썰풀이는 그만 좀 하시고, 전 가볼게요."
"에이... 쌤 재미없어..."
"아, 마에다군 캐스트 제거하고 이제 재활치료 할거에요. 쌤들 별 일 없으면 휠체어 상하차까지 부탁드릴게요. 정 힘들면 남쌤들한테 부탁할테니 이야기 해주세요."
그렇게 히히덕거리는 인계시간이 끝나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많지 않은 수의 환자를 보며 사실 진료실에 있지만 별로 하는 일은 없었다. 환자 자체를 극히 적게 보고 있기도 했고, 어렵지 않은 수술을 진행하고 그 뒤의 이야기나 진통제 처방이나 하고 있었다.
히로키는 뼈가 다 붙어서 이제 재활치료를 하자고 했다. 한참 누워있어서 다리근육이며 쓰지 않았던 근육들을 조금씩 깨우고 움직일 수 있게 천천히 진행했다. 아마도 퇴원이 늦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을 전엔 퇴원할 거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퇴원계획을 세우던 그 때,
가로로 문이 열리더니 캐스트 풀고, 재활하던 모습으로 진료실로 들어왔다. 약간의 땀이 맺힌 상기된 볼이며.. 위험하다.
"....신경써줬다며. 고마워."
먼저 말한건 히로키였고, 그게 고마움의 표시라는 건 알았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을 섣불리 고백이라도 할까봐 조심하고 있었다.
"어.. 응.. 일이니까..."
"...그래? 일이니까?"
"응.."
그렇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긋기를 하는 게 역효과였던 것 같다.
"나 좀 봐봐."
턱을 잡아당겨 강제로 시선을 잡아채는 듯한 말투였다. 멈칫, 잠깐 눈이 맞았을 것 같은 찰라가 짜증으로 되돌아왔다.
"언제까지 피할건데, 환자 안봐?"
"어? 어디 아파? 아프다는 인계 못받았는데."
"어, 존나 아파."
"어디가? 재활하면서 안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가보네."
왜 안봐주냐고 짜증내던 히로의 말에 놀라서 뭐든 할테니 지금 당장 나가줘라는 마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계속 노려보고 있지만 그 시선이 찰라라도 맞을까봐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면하고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 맹수의 눈빛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 소염진통제랑, 근육 이완제 처방할게"
"그래서, 나 언제까지 피할거냐고"
계속 평생. 영원히. 라고 대답하면서
"많이 힘들면.. 응?"
그 말을 모른 채 하고 싶었다.
"무슨 의사가 환자를 보지도 않고 처방하냐.."
"재활치료실에서 온거면.. 어디가 아픈데? 다리? 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을 때와는 다른 강한 체향이 풍기는 운동한 남자의 체취는, 위험하다.
환자를 보고 처방을 하라지만 보지 않아도 처방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어떤 상태인지 인계만 듣고, 챠팅된 내용만으로.. 충분하다고 하고 싶었다.
어느 근육이 사용되고 있는지, 혹시나 인대나 뼈의 문제는 아닐까 촉진하고 싶었지만 가던 손을 주먹쥐었다. 그리고 빙 둘러 말했다. 만지지 않겠다고.
"원래 안쓰던 근육 쓰면 근육은 팔열되면서 생기는 거라 아픈거야. 계속 누워있다가 걷는 연습하는 기분은 어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파악이 안되면서 입은 적당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기분 이상해"
그렇게 말하는 게 내가 시선을 피해서인지, 아니면 재활치료가 이상하다는 건지 아니만 중의적인지 까진 알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보지 않고 마주하지 않으려고 엑스레이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말을 이었다.
"여기가 부러졌었던 곳이고, 갈비뼈도 여기여기, 지금은 붙었지만 엑스레이 상에서 보면 부러진 뼈는 계속 표시날꺼에요. 아 뭐 잘 걷다가 다시 걷는 걸 배워야 하는 게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지.여기 부러졌었는데 깔끔하게 붙었네."
"아..."
"근육통 심할테니 약이랑 많이 힘들땐 얘기해. 물리치료나 주사 처방해놓을게."
"......"
주제에 걷도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심경이 편해보이지 않았다.
"갈비뼈도 팔도 깔끔하게 붙었네."
말을 하고 있지만 이건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다. 히로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고 있다. 왜 만나지 않는지 환자를 보지 않는지 그런 질문에 사소한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현재 몸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쌤"
"응?"
"아까전부터 신경쓰였는데, 나 왜 안봐?"
등지고 환자를 보지 않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건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에 좋지않는 방법이라고 배웠지만 난 볼 자격이 없었다. 시선을 내리깔자 그 눈을 마주하겠다는 일념으로 더 아랫쪽에서 날 열심히 쳐다봤다.
"내가.. 보는거.... 기분 나쁘지 않아..?"
"왜??"
"그런.. 일.."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 속에서 히로가 좋아하는 기억은 없었다. 내가 매번 불쾌하게 만들었고, 아직도 하고 있었다. 밤에 몰래가서 키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 해야 하는건데.."
미안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첫번째 사과하지 않는 이유.
"미안."
그러면서도 사과 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움받기 싫어서.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 짓을 해놓고, 반대로 히로 입장이면 변태아저씨가 성희롱 한 게 되니.. 그 입장에서는 사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객관적 입장에서는 사과 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면 다음엔 그러지마."
다음엔 그러지 말자. 히로가 허락하면 해야지.
그렇게 마음속에서 다짐을 하면서도 어떻게 안그럴 수 있지? 라는 의문이 같이 생겨났다.
"안 그럴려고, 안 보는거야"
보면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가지고 싶다.
"응? 그게 무슨.."
말하는 입술이 촉촉하고 예쁜 빛을 띄고 있다. 보고 있지 않지만 히로는 너무 예쁘다. 지금도 키스하고 싶다.
"그리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라서."
그렇게 비쳐진 히로의 예쁜 얼굴은 내 우울한 얼굴이 비친게 보였는지 위로의 말을 내놓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사과도 했고, 신경도 써줬잖아. 당신보다 더 병신... 아니 사람같지 않은 사람도 많.."
위로의 말을 하다가 화가 났는지 말이 중단되었다.
"....에이씨 내가 왜 이런 말까지.."
그렇게 뒤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지만 재활치료 시작한지 얼마 안된 팔이며 다리로 수동휠체어를 밀고 가는 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쌤 나 힘들어. 휠체어 밀어줘."
"아, 응"
"진료실까지 오는거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담엔 직접 와서 봐줘."
와도 된다는 말이지만 가고 싶지 않다. 가면 나는 또 미움받을꺼니까.
그렇게 병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볼 일은 없었지만 종종 거울이나 그런것들에 비쳐서 시선이 닿으면 먼저 피하는 건 나였다.
병동에 엘리베이터 내리자마자 스테이션에서 담당간호사가 뛰쳐나왔다.
"쌤, 제가 할게요."
올라오면서 설마 내가 히로를 끌어안고 침대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으로 도착해서 보니 간호사가 발벗고 나서줬다. 아니, 엄청 노려봤지만. 처음엔 굼뜨게 앉아있으면서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마에다군, 불편한 거 있으면 간호사들한테 얘기해요."
"......"
히로 특유의 불만이 쌓인 표정. 나는 그를 경계하듯 칼로 그 거리를 측정했다. 접근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환자를 꼭 보지 않아도 된다고, 간호사를 통해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있다는 사무적인 표정까지.
"마에다군~ 재활실에서 병동으로 전화하지 그랬어요~"
보통때는 재활한 뒤에 준간호사들이 데리려 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간호사가 그 뒷수발을 하려고 하니 귀찮은 모양이다.
"알았어.....요. 전화번호 까먹어서.."
"데리러 갔을건데~"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요. 번호... 메모해줄게요."
"네"
눈치빠른 간호사가 메모지와 볼펜을 건내줘서 번호를 적었다. 개인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가 한 장 떼어내고 접고, 진료실 내선번호를 적었다.
직접 건내줘도 될 일이지만 간호사에게 건냈고, 간호사가 히로에게 건내주었다. 이 불편한 관계가 싫었는지 피망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고마워..요"
계속 노려보지만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히로는 날 쳐다보고 난 간호사를 보고 있었다.
담당간호사를 부르고 지시했다.
"타바타씨, 재활때문에 힘들었던 거 같으니까 오늘 저녁부터 po 증량 있을거에요. 많이 힘들다고 얘기하면 prn 처방해둘테니 그거 주세요."
"네"
업무적인 지시를 끝내고 진료실로 내려가려고 발을 돌리자,
"저기, 과장님.."
"네?"
불러 세워서 그녀를 보았다.
"마에다군 침대로 혹시.. 옮겨주실 수 있나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서 지금 내가 지시를 받았나? 상하관계 왜이런거지? 하는 게 얼굴에 드러났다.
"죄송해요. 저.. 2개월이라고 진단 받아서.."
임신했다는 말이고 위험한 시기라는 자기PR까지 했다. 표정이 굳은 채로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이상한 웃음이겠지.
"축하해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규간호사인데 히로만 보느라 편하게 일해서 임신도 했냐는 말이 턱밑에 걸려 있었다. 당연히 그런 여혐발언은 하질 않았다. 그런데 결혼했단 얘기 못들었는데..
"아시다시피.. 좀 조심해야 될 때라.."
그녀는 아무래도 내게 히로를 안아들고 침대로 옮겨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남자 간호사 부를게요."
너스스테이션의 내선 전화를 들고, 번호를 누르지않고 쳐다보고 있는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재활실로 걸어줘요."
외과의사 곁에서 유능한 서포트를 해주는 스크럽너스들에게 쌓여있다가 병동에서 이런 둔감한 표정은 참을 수 없었다. 신호음이 들리고 굵직한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타치바나 슈입니다. 야마오카 선생 있나요? 올라오세요."
다른 지시도 없이 올라오라는 말을 건냈다. 무슨일로 불렀다는 건 올라오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별도의 지시도 없었다.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그냥 그 자리를 뜨려고 인사를 했다. 히로를 보고 나도 모르게 헤벌쭉 해져서 말했던 것 같다.
"히, 마에다 군은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요."
내가 니 전화를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선을 그을 때는 언제고 전화하라고 하고. 나도 참.. 내려갈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니 전화했던 간호사가 올라왔다.
"야마오카 입니다."
"이쪽은 마에다군이에요. 침대 오르내릴 때 부탁 좀 할게요."
기본적인 인사와 업무지시, 그리고
"병동에서 종종 부를거에요. 바쁘셔도 좀 도와주시꺼죠?"
일이대한 불만이 혹여나 히로에게 미치지 않게 쿠션을 넣어 명령했다.
"네 물론이죠."
그런 독화살을 적당히 쳐내는 그런 강한 남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조금 위축들었고, 다른 스타일이지만 약간의 열등감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 안녕하세요. 마에다 히로키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의 앞에서 소녀같이 새초롬하게 인사하는 히로가 낯설어서 기가 막히고 화가났다. 둘이 가볍게 악수를 하고 눈빛 교환을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지시한 일이지만 그가 히로를 안아들고 있는 거 상상하는 것 만으로 폭발할 것 같은 심경이었다. 너는 내 충직한 개이고, 내가 갑이고 내 공주님인 히로를 건들여서는 안된다라고 못박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도 없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죠."
냉랭하게 인삿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 몇발작 안되는 순간에도 궁시렁 거리는 표정이나 말이 그녀들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기회를 줬는데 차버린 건 슈쌤이잖아요~'라고 야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ㅡㅡ 미안하면 다음엔 그러지마. ㅡㅡ
그의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말이 맴돌았다.
그래, 안그럴려고 안만나는 거고, 안그럴려고 남의 손에 맞기는 거니까.
슈는 어릴 때 엄마가 생각났다. 어느 때 부턴가 육아는 할머니가 도맡게 되었다. 엄마는 병원복귀를 하고부터는 아무래도 시간이 나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울증인지 자기제어가 안되서인지 충동조절장애 때문인지 지금 어른이 된, 의사가 된 시점에서 보기는 그랬던 거 같다. 보면 트라우마의 현신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결혼과 그 부자연스러움과 그리고 잘해주고 싶지만 보게되면 괴롭히고 화내고 때리게 되는 그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거 같았다.
"엄마도.. 힘들었겠다."
어떻게 고쳐야 할 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둘만 함께있는 일은 없었고, 그렇게 엄마의 손찌검 횟수만큼 애정표현도 줄었다. 분명 서툰 사랑을 했었던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서로가 보면 그 나쁜 기억이 관계를 갈라놓았다.
진료실에서 한참을 있다가 긴 해가 지고 늦은 밤이 되어서 퇴근하기 전에 병동으로 올라갔다.
"쌤, 히로 아직 안자요."
"뭐해요?"
"게임요. psp 있잖아요."
"아, 그래요.."
해가 길어진 것도 있지만 그만큼 많이 나아서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어지다 보니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그만큼 자기시간이 많아졌고, 저녁에 자는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신작 사고 싶다는 거 있으면 얘기해줘요"
"요새 psn으로 다 받잖아요?"
"그러게요.."
엄마가 날 할머니 손에 맞겼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새끼 내가 보지도 못하는데 난 필요없는 존재라고 이렇게 음각으로 새겨진 기분. 양볼에 무능이라고 낙인찍힌 사람처럼 터덜터덜 퇴근했다. 퇴근전의 최소한의 즐거움이었다. 자는 히로에게 하는 키스.
퇴근하면서 출근하고 싶지 않아. 그건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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