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곁에 있고 싶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 헤어진다고 해서 슬퍼 죽을 정도도. 순간은 잠시 힘들다가도 그리고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그게 사랑이고, 헤어짐이고 잊혀짐이다.
할 일도 없는 책상에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깨에 기대서 앞으로 꼬꾸라진다. 외과의사의 책상이란 의미도 없이 아무것도 없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술을 할 것이라는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일 외엔 데스크워크란 거의 없고, 수술대 위에서 잠든 환자를 수술하는 게 본 업무이다. 내과의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어떤 약물을 얼만큼씩 쓰는지 오더도 내고, 환자의 상태도 확인한다. 사실 내과의에게 맡겨야 하는 일을 억지로 보고있는 환자가 한 명 있다.
마에다 히로키
몇 달 전에 응급수술로 입원한 환자로, 그 마에다 의원의 둘째아들? 셋째아들? 인가 라고 한다. 아마도 병원에서 보단 VIP주최 파티장 같은 곳에서 스쳐지났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자고있는 그 아이를 손 댄 건 확연한 범죄다. 동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은 범한 자가 지게 되어있다. 수술 역시 그러하다. 수술동의서를 보호자에게 받아내는 일도 그 수술에 대한 설명과 그에대한 리스크를 보호자에게 알려주고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겠다는 의미에서 동의를 받는 것이다. 얼마의 확율로 사망할 수도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의사인 내가 아닌 보호자에게 책임을 넘긴다는 의미이다.
이 아이의 보호자, 한 번도 본 적 없다. 사진이나 티비라면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유명인사다 보니, 아니 선거철엔 시끄럽게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있는 사람이다보니..
그것보다 곧 퇴원이네. 보내고 나면 시원섭섭하려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큰 존재였을까 하는 우려를 하면서 퇴원준비를 하고 있다. 오히려 바쁘면 나을 것 같은데. 일에 치여서 제대로 못봤다면. 시간이 남으니 딴생각이 들고 그게 주로 나쁜기억들이다. 그래서 우울해진다는 게 정설일지도 모른다.
보내기 전에 고백이라도 할까. 마지막으로 보게 될건데, 고백 한다고 바로 굳은 표정 지으면서 그렇게 안봤는데 라며 포비아 같은 행동을 보일까. 점점 안좋은 생각에 빠지면서 머리가 둔해져서 뇌를 꺼내서 씻고싶은 느낌이 들었다.
서랍에서 두통약 두 알을 꺼내 먹고는 물을 마셨다. 길쭉한 흰 알약은 사실 크기가 좀 큰 편이라 먹기 부담스러웠다. 두통약 갯수가 늘어서 빨간색 동그란 알약도 번갈아가며 먹고있다. 그래도 계속 늘어만 가는 두통의 원인은 그 아이 이지만.
꽉 끼는 헬멧을 쓰고 있는 느낌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계속 생각하고 계속 슬퍼하고 계속 안좋은 쪽으로만 연상이 된다. 친근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었던 적이 많이 있다. 종종도 아니고 많이 있었다. '나'와 친하려고 친한 게 아니라 집안이라거나 금전적인 이유, 그리고 내 옆자리를 노린 여자들. 부인이 되면, 그 집안이며 금전적인 모든 부분이 손에 들어오는 그 욕망의 빛을내며 달려드는 여우들은 사실 구분하기 쉽다. 뻔하니까. 하지만 그런것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상대의 감정에 내가 무감정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감정이 부정당하는 건 어느 누구라도 힘들 것이다. 스토커든, 팬이든. 그 선을 넘어선 안되지만 그 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자주 있다. 마음이 가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그걸 먼저 표현하는 일은 잘 없다. 아무래도 이런 저런 일을 겪은 어른이라는 자리는 그리 쉽게 마음이란 걸 주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어른이 되도 어린애 같은 마음이랄까. 마음을 형상화 한다면 기체같은 게 아닐까. 드라이아이스라거나. 나에게 있을 땐 고체의 형태를 띄고 있다가 적정온도가 되면 그에게 가버리는.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지지 않을 꿈이라면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악몽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다. 그냥, 이 꿈에서 지겨운 알람소리와 함께 꿈을 깨고 싶다. 하지만 꿈에서 깬다면 넌 없겠지. 그런... 순간의 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