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수발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아침 인수인계가 되고있는 너스 스테이션은 전쟁터였다. 물론 혼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침 이 시간부터 의사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잘 없었다. 안쪽에선 인수인계로 정신없을게 뻔해서 그냥 밖에 앉았다.
"VVIP룸 너스콜은 어디에 불 들어와요?"
신규인지 준간호사인지 구분 안되는 미묘한 연령의 미묘한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여자사람의 연령과 외모를 일치시키질 못했다. 준간호사 신졸이라면 고졸일테고, 정간호사 신졸이라면 대졸일꺼다. 그 나이차가 있을텐데도 전혀 모르겠다. 그 '여성의 나이를 구분 하지 못한다'는게 내가 여성에 관심이 없어서 라는 걸 알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아, 여기에요 선생님."
"고마워요. VVIP룸은 제가 갈게요. 혹시나 콜 들어오는 거 제가 놓치면 얘기 좀 해줘요."
"네, 선생님."
스테이션에서 심심해서 적당히 손에 잡히는 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인수 인계가 끝난 수간호사가 나왔다.
"타치바나 슈 선생님? 여긴.. 왠일이세요?"
주말을 깨는 월요일에 출근한 수간호사는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인수인계하면서 다 들었을건데도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놀란 눈치였다.
"VVIP룸, 제가 볼꺼거든요."
"아, 그 마에다 의원님..."
"선생님,"
수선생님의 말을 자른 건 그 신규간호사였다. 물론 그 대담함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고마웠다.
"네?"
간호사가 왜 부른 줄 알겠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고 병실로 달려갔다.
"불렀어요?"
문 반틈 정도 열고 빼꼼히 안쪽을 들여보았다. 히로키는 내가 누른게 너스콜인지 의사콜인지 모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호사 누나가 오길 바랐던 걸까... 뭐, 나같은 아저씨보다 신규 간호사가 와도 자기보다 연상인 누님인데..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들어서 갈려고 말을 이었다.
"용건 없으면 갈게요"
우울한 생각을 벗어내려는 거짓 웃음을 살짝 지어보이니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 창문 좀 열어주실 수 있으세요?"
너스콜을 눌렀는데 왜 내가 왔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내가 꿋꿋이 올 생각에 흘러버렸다.
"창문요? 알겠어요."
아침이니 커튼을 다 열어재끼고 창문도 살짝 열어주었다. 식사하고 난 뒤에 창문도 안열어줬구나.
"또 없어요?"
뒤돌아서 히로키 얼굴을 한 번 더 보려고 마주보았다. 왜 계속 의사쌤? 계속 의사쌤? 나가도 의사쌤만 있는건가? 하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네"
하는 억지로 끄집어낸 건조한 대답에, 이어진 말 역시 건성이 묻어났다.
"고.. 맙습니다."
집안도 집안이고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며, 그리고 그만큼의 가정교육을 받은 티가 났다. 동네 양아치마냥 바이크 타고 구른 녀석치고는 귀티가 났고, 의무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몸에 벤 모습이었다. 나랑 똑같이.
"또 필요하면 불러요~"
발랄하게 그렇게 말을 건내니 놀라서 눈이 커지더니 나가는 길에 꽁알꽁알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너스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타치바나 선생님. 드레싱세트 준비 다 해두었습니다."
양치한다고 칫솔이며 양치컵, 그리고 개수를 위한 퍼스팬을 가지고 갔다가 다른 건 1인실 화장실에 두고 퍼스팬은 스테이션으로 챙겨갔다.
"아, 고마워요."
"선생님, 아침 드셨어요?"
"아직요. 금방 먹고 올테니까 다른 환자들 드레싱 좀 해주세요."
"마에다 의원님 아드님은요?"
"히로키군은 제가 할게요."
스테이션에서는 '마에다 의원님 아들'이라는 긴 이름으로 불리지만 혼자서 '히로키'라고 부르고 있었다. 애칭은 뭘까? 역시 히로? 히어로(일본어 발음으로 히로 = 히어로)일려나.
조식을 챙겨준 시간이 대략 7시, 그리고 내가 조식을 먹고있는 시각, 9시에는 보통 회진을 돌 시간이지만 나는 담당하는 환자가 없는 관계로 회진을 돌 필요도 없고, 윗대가리들이 한바퀴 도는 데 졸졸 쫓아다니는 병아리 시절도 지난 관계로(게다가 갑) 평화로운 시각에 혼자서 조식을 먹고 있었다. 아니 적고보니 이상하군. 평화로운 시각은 아니다. 식사시간이라면 그나마 조용한 조리실이지만, 12시에 점심을 배달하기 위해선 9시에 한참 재료배달이나 주문으로 바쁜 시간대였다. 평화로운 시각이라기 보단 전쟁터였다. 재료손질과 설거지, 위생 점검 등으로 아수라장인 안쪽 상황이 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럴바엔 히로키랑 같이 먹을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식을 추구하지만 식이조절이 필요한 이유도 없기 때문에 일반식사에 좀 더 청소년식단(성장기에 필요한 비타민이나 무기질, 그리고 단백질이 충만한 식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싫어도 먹어야 하는 게 아무래도 채소이다. 피망이며 당근, 그리고 양파써는 소리가 들리고 철판에 쥐어낸 햄버거는 스테이크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절반은 고기고 절반은 두부인 그런 두부스테이크도 있고, 전체가 두부인 콩고기 스테이크 인 것도 있었다. 치아가 안좋은 사람을 위해서 당근도 피망도 양파도 잘게 다져서 거기에 콩고기 스테이크이니.. 참 건강식이다. 나도 아직은 어른이라고 하기엔 어린편이라 저런 건강식따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고기 큼직큼직하게 썬 걸 질겅질겅 씹고 싶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한 건 히로키의 입술이었다.
'키스할 때 쫓아오는 혀, 말캉하니 좋았는데..'
규탕(소혀구이)을 사올까? 아니면 뭐 어떤 특별식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그냥 큼직한 고기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식판을 반납하고 영양사를 불러서 오늘을 식단의 식재료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식단을 요청하고 식당에서 내려갔다.
스테이션에 가서 드레싱카를 끌고 가는 게 귀찮아서 트레이만 챙겨 가기엔 히로키 환부도 많고 넓은편이라 그럴 순 없었다. 한 숨 자고 있진 않냐고 물었더니 자고 있진 않고 밖에 멍하니 누워있다고 했다. 뭐.. 전망좋은 VVIP 1인실에서 전신 타박상과 골절이 많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 욕창이 생길 것 같아서 포지션 체인지를 한다거나 해야 할 나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움직이지 않는 게 나았다.